프로그래머? 난 아직 아마추어였다.

“좋은말로 하는건 오늘까지입니다. 전화 받으세요. 약속을 이렇게 하는건 아니지요”
“내일 경찰서가서 고소합니다. 빈말아닙니다. OOO씨 때문에 오늘까지 기다립니다.”

내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요즘이다.
아니 최근들어 너무 자주 이런 일이 생긴다.
이제 그만 둬야지, 나도 직장 다녀야겠다고 마음 먹기 시작한게 최근 몇년전 부터였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고소 협박문자다.
내가 27살이였나보다.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를 하겠노라 큰소리치고 1년이 되던 해 나는 처음 경찰서란 곳을 가게 됐다.
프로그램이 완성 되었음에도 중도금을 차일피일 미루는 의뢰인에게 지금까지 없었던 일로 하자며 사이트를 닫아버렸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런 상황에서 미흡하게 대처하는건 나아지지 않은거 같다.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11년동안 나는 한번도 프로다운적이 없었던거 같다.
나의 20대는 그렇게 이사람 저사람 비위 맞추고 협박 당하고 때론 애걸하며 지났다.
즐거운 기억이 많지가 않다.
사람들에게 치이는게 싫었고 내가 일하는 것만큼 인정 받고 싶어서 프리랜서를 하겠다고 한건데 나의 가장큰 판단 착오였다.
그만 두자 하면서 견적 의뢰가 들어오면 다음달 방세를 생각하며 이번만, 정말 이번만 한게 11년이 됐다.

1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정말 별에 별 사람들을 다 상대하며 살았는데 왜 아직도 이런 문자를 받게 된걸까.
선배의 지인이 쇼핑몰을 하려는데 시작이 어렵다며 상담을 부탁해 왔다.
막상 자리에 나갔을 때는 선배가 부탁한 사람 외에 그의 동생이라는 사람도 함께 있었고 나에게 이런저런 자신의 사업 계획을 설명하더니 프로그램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 내가 배워서 해도 되는데 시간이 없어서…] 

https://zibsin.tistory.com/64

 

예전에 올렸던 포스트 내용이 재현되고 있었다.
쇼핑몰 상담하러 온 줄 알았다고 하니 우선 이것먼저 만들어주면 쇼핑몰도 할거란다.
거절을 잘 못하는 나의 성격이 화를 부르고 말았다.

그리 복잡해 보이진 않았다.
1주일 정도 작업해서 1차작업 끝나면 약간의 보완작업을 거친 후에 어렵지 않게 끝낼 듯 했다.
쇼핑몰이야 워낙 많이 작업 했던거라 큰 어려움이 없지만 이렇게 의뢰인의 생각에 맞춰 요구사항을 구현해야하는 프로그램은 아무리 간단해 보여도 복병이 항상 숨어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되는거였다.
간단해 보여도 작업이 막히는 요인이 생기면 시간이 훨씬 지체 될 수 있다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나의 두번째 실수였다.
1주일 정도면 될거라고 했는데 나는 이미 2주째 시간을 쓰고 있었다.
다른 업체에선 연말이라 유지/보수건이 쉴세 없이 들어온다.
갑자기 정신이 없어진다.
아침 여섯시까지 작업을 하고 씻고 잠들면 오후 12시에서 1시가 된다.
이럴 땐 왜 잠도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계속 문자로 상황을 전달하고 열흘이 되던 날 전화가 왔다.
자기가 블로그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이까짓꺼 만드는데 왜 진척된게 없냐고 한다.
상황을 설명하려니 이 사람은 자신의 위치가 “갑”이라는 것이 엄청난 권력인냥 완전히 귀를 닫고 입만 열고 있다.
서로 감정 상하면 나머지 작업을 마무리하는데 힘들기 때문에 최대한 흥분을 가라 앉히고 차근차근 설명하며 달랬다.
그날도 아침 여섯시까지 밤을 새는데 잠이 쏟아져 찬물로 계속 세수를 했다.
그것이 또 실수였다.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찬물로 씻으니 지독한 감기가 들어 나는 그날 하루 침대 밖을 나오지 못했다.
저녁 무렵 역시나 찬물에 밥한그릇 말아서 먹은게 20시간 넘는 동안 먹은 첫끼였다.
자정 쯤 되니 정신이 든다.
유지보수 해주던 업체에서 메일이 온게 있나하고 작업실에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전화기를 보니 14건의 부재중 전화와 2건의 문자가 와 있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에 집중됐다.
내가 30만원 남짓하는 계약금 떼먹고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나보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헛 웃음이 나온다.
문자와 이메일을 보내 놓고 다시 잠이 들었다.
잠깐이라도 작업을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손이 후들거려서 작업이 어려울거 같았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전화가 걸려와 우뢰같은 목소리로 다양한 인신공격을 한다.
맏받아칠 기운도 없어 그냥 듣고만 있었다.
간만에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욕도 들어본다.
역시 “갑”은 대단하다.
주말이지만 오후가 되면 기운차리고 마저 작업을 해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오후로 다시 밤새워 이틀이 지났다.
꾀나 진척이 되서 마무리 작업이 남았다.
보완작업을 정리해 달라며 메일을 보내 놓고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다.
주말동안 작업한다더니 뭐했냐고 한다.
아… 힘들다.
그 기운 없는 와중에 이 사람이 이 계약을 파기하자고 먼저 말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만 들었다.
블로그 제작해 봐서 프로그램이 겉으로 들어나지 않더라도 작업양이 많다는거 알텐데 왜 이해를 못하냐고 하니 자기는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어 봤단다.
그가 처음부터 홈페이지 제작 경험도 있고 블로그도 만들어 봤다기에 적어도 테터툴즈 블로그 설치라도 해봤나 싶었다.
관리페이지에 들어가 이것저것 설정하면 자기가 원하는 모양이 나오는게 홈페이지라고 알고 있던 것이다.
이 사람을 곧이 곧대로 다 믿고 받아들였던게 또 실수였다.
내가 그동안 놀면서 일 안한거 같으면 FTP 들어가서 파일을 받아서 직접 살펴보라며 FTP 사용법도 설명했다.
한참 후에 다시 전화가 온다.
무얼 어떻게 봤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한 티는 난단다.
그래도 여전히 작업된게 자기 맘에 안드니 환불 해 달란다.
흥쾌히 명의이전 해주고 10원단위까지 계산해서 고스란히 환불해 줬다.
331,720원.
이젠 웃음이 나온다.
나 보름동안 왜 밤샘 작업하고 온갖 모욕 참아가며 일한걸까.

환불을 해 주고 밥을 먹고 나섰는데 두 건의 견적 의뢰가 또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이젠 작업 의뢰 안받는다고 했다.
그러니 나 마음 약해질 소리를 한다.
나는 아직 확답을 미루고 있다.

20년전 처음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란 걸 할 때는 모든게 즐거웠다.
초등학생 때는 우리반 성적 계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선생님께 칭찬듣는게 좋았고 고등학생 때는 음악 반주 프로그램을 만들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게 좋았고 대학 때는 멀티유저 스케줄러를 만들어 전국대회에서 수상했을 때 교수님의 인정해주는 눈빛이 좋았다.
그래서 졸업을 했을 때 나는 이 일이 내 평생 즐거운 일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남을 위해 만드는 프로그램은 너무 재미가 없다.
이렇게 될 줄 난 정말 몰랐다.
자신이 없다. 이젠…


그런 일이 있고나서 한 달 후 쯤 다시 그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후회 스럽다며 다른 회사에 맞기겠다더니 사이트 제작은 시작도 못했다.
그리고 다른 두 건에 대해 다시 제작 의뢰를 하고 싶단다.
참으로 뻔뻔스러운 사람이다.
그 땐 미안했고 이번에 100% 선불로 지급해 줄테니 꼭 작업을 해 달란다.
그의 요구를 거절하는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