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프로그래머? 노동자? 잡부? 난 누구냐.

어릴 때부터 내가 할 줄 아는거라곤 컴퓨터 깨작거리느거밖에 없다.
초등학교 다닐 때 겨울방학 과학 아카데미 다니던 시절 선생님이 차비하라고 준 돈으로 오락실(보글보글)에 모두 상납하던 때를 빼고는 게임에 미치도록 매달려 본적도 없고 그 흔한(?) 스타크레프트, 워크레프트, 리니지 이런 게임들도 할 줄 모른다.
구구단을 짜더라도 컴퓨터 언어로 뭔가를 만드는게 더 재밌었다.

이 짓을 직업으로 삼은지 십년이 됐다.
그동안 재밌었던 적은 없다.
웹디자이너를 방직공장의 여공처럼 대하던 사장과 싸우고 나와서 프리랜서를 시작했다.
운이 좋게 시작하자마다 쇼핑몰 건이 들어왔다.
그 때 일거리가 그렇게 들어오면 안되는거였다.
싫든 좋든 다시 직장에 들어 갔다면 직장 상사 몇명의 비위만 맞추면 되지만 지금은 모든 의뢰인이 직장 상사가 된다.

3개월 전, 한 업체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러 경로를 거쳐 나를 찾게 됐다고하는데 관공서 일을 의뢰 했다.
그쪽은 법인이였고 나는 개인이다.
나는 그 회사로부터 하청을 받았다.
얼핏 보기에 그닦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적당한 가격이라 생각되는 금액에 계약했다.
작업 기간도 3개월이라고 하니 조건은 괜찮았다.
그 회사에서 서버를 셋팅하면 내가 작업을 시작하면 됐다.
문제는 서버 셋팅하는데 두달이 걸렸다.
내겐 한 달의 시간이 주어졌다.
한 달, 부지런히 하면 될거 같았다.
또 다른 문제, 그 회사에서 서버를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이 없어 데몬들이 수시로 다운된다.
큐브리드라는 생소한 DB를 이용하면서 가뜩이나 손에 익지 않은데 서버까지 말썽이다.
작업 시작하고 2주가 지나자 프로그램 다 됐냐고 전화가 온다.
그 때부터 나는 조바심이 난다.
결국 3개월내에 해결을 못했다.
나는 1주일만 시간을 더 달라고 한게 벌써 3주를 더 써버렸다.
이젠 내가 거의 다 됐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그쪽도 자포자기 한 듯 마무리나 해달란다.
나만 죄인 된 느낌.
30여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한 달만에 하겠다는 내 생각도 잘 못 된 것이였다.
한번은 할 얘기가 있으니 사무실에 방문하란다.
그래서 피곤한 몸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바쁘다고 다음에 얘기 하잖다.
지난 달 할부로 구입한 중고차가 아니면 뒤집어 엎고 싶다.
처음에 프로젝트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도 잘 못이다.
그러나 3개월의 시간 중 2개월을 서버셋팅에 써버린 그 회사는 내게 떳떳하다.
나는 하청업자다.
할말이 없다.

비슷한 무렵 한 부동산에서 프로그램 의뢰가 들어 왔다.
부동산 중개 프로그램이 아니였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일을 의뢰하러 왔다.
웹프로그램으로는 안되는 것이니 경기도나 서울쪽 업체로 알아보라 하니 쌩 하고 사무실을 나간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찾아 왔다.
프로그램을 바꿔서 간단한 형식으로 만들어 달랜다.
해본적 없는 프로그램이라 힘들거 같긴 했지만 AJAX를 이용하면 어느정도 비슷하게는 될거 같았다.
강의 하듯이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 왜 그런지 열심히 설명한 후에 계약에 들어갔다.
역시 쉬운 작업은 아니였다.
작년부터 준비한 AJAX가 그나마 도움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2개월 작업 끝에 잔금을 받았다.
며칠 후 찾아 와서 프로그램을 수정 해 달란다.
처음 몇 번은 그런 일이 있으니 당연히 해달라는대로 해줬다.
며칠 후 또 찾아와 기능을 바꾸고 싶단다.
해 줬다.
며칠 후 도 찾아와 다른 기능을 넣고 싶단다.
웹 프로그래머들이 제일 싫어 하는 작업이 테이블 스키마 변경이 들어가는 수정 작업이다.
조금씩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이미 쌓여진 스트레스가 시멘트처럼 굳어져가는거 같다.
다른 일로 바빠서 더 이상 힘들다고 하니 수정 작업비를 선불로 주면 해 줄 수 있냐고 한다.
나는 지금 단 일 푼이 아쉬운 때다.
자존심 상하는 말이지만 못한다는 말을 못했다.

봄에 ERP 프로그램이 하나 들어 왔다.
이미 두 건의 계약이 있었기에 프로젝트를 맡을 수 없다고 했다.
내가 이미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 중에 비슷한게 있긴 한데 이 프로그램 시연을 해 줄테니 이거라도 살거면 사고 주문제작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일단 프로그램을 보잖다.
그래서 설치 해 줬다.
사겠단다.
100만원이 덜 왔다.
돈이 부족하다고 하니 하나만 수정 해 달란다.
사무실 임대료 낼 날이 다가와 오던 때였다.
수정 해 줬다.
20만원 더해서 120 줄테니 하나만 더 손 봐달랜다.
해줬다.
60만원을 준다.
나도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60만원 안 받기로 하고 손 떼기로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무실로 찾아 온다.
수정해야 할 목록들을 갖어 오더니 이거 다 해주면 잔금에 두 배를 더 주겠단다.
결국 해 줄 수밖에 없었다.
반만 입금 됐다.
앞으론 선입금 아니면 아무 작업도 안해준다고 못을 밖았다.
요즘 연락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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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청 준 사람이 계약한 금액은 내가 받기로 한 돈의 다섯배라는 걸 알게 됐다.
요즘 마음이 많이 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