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문대 졸업과 동시에 나는 방송통신대학교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내가 편입하고 싶었던 학교는 원주의 한라대학교나 연세대 원주캠퍼스였다.하지만 영어에 대한 부담도 컷고 무엇보다 더 이상의 학비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다녔던 2년제 전문 대학은 국립이였고 조금씩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기 때문에 학교에는 거의 돈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사립대로 편입을 하게되면 학비부터 생활비까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했고 당장에 등록금 마련도 어렵웠다.
일하면서 학교 생활에 전념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게 방송통신대학교였다.
방송통신대학교의 편입은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능했다.
교재를 준비하고 방송 강의를 들으며 나름 열심히 했다.
지역 학습관에서 같은과 학생들이 모여 공부 하고 때때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임도 즐거움을 줬다.
한 학기는 그렇게 열심히 했던거 같다.
그리고 두번째 학기가 됐다.
등록금이 28만원 남짓이였기에 학비 때문에 고민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학교에 대해 부담이 없어서였을까.
2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나태해지기 시작했지만 결국 나의 나태함을 고치지 못했다.
6과목 중 4과목이 펑크 나고 나는 4학년 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런채로 1년, 2년, 3년이 흘렀다.
신입생 환영회 때 받은 방통대 다이어리의 속지를 바꿔가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그 것이 아니였다는 나는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녔었다는 것조차 잊고 살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재등록 권유를 계속 받았고 한 번 더 등록을 한적이 있지만 나는 한학기를 버티지 못하고 또 두 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가 왜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컷다.
전문대를 졸업하면서 유독 편입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솔직히 그들이 부러웠던거였다.
더 공부를 하고 싶고 군대를 갔다오면서 너무 짧았던 캠퍼스 생활도 아쉬웠다.
어찌보면 내가 방송통신대학교를 두 번이나 실패 한건 당연한 것이였다.
그것을 알고나서 더 이상 학교에 대한 미련을 버린채 살고 있었다.
나는 기술직 종사자다.
모르긴 해도 이 지역내에서는 어느정도 실력을 인정 받고 있다 생각했다.
실력이 있으면 학벌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나는 내 전공에 대해서 만큼은 공부를 멈춘적이 없다.
프리랜서를 하다보니 자칫 긴장감이 풀어질까 싶어 학교 다닐 때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자격증 시험에 도전을 하고 지금은 자격증 취득이 마치 취미처럼 됐다.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내가 전문대 출신이라는 걸 상기시키는 사건들이 생겨났다.
항상 공부를 계속 했고 오랫동안 일하면서 쌓았던 경력이 학력에서 한순간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 때 나는 다시 학교를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립대학교는 여전히 등록금에 대한 부담이 컷고 인근의 국립대학교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로부터 “학점은행제”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고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한 제도라는 생각에 그 날로 학점은행제를 시작했다.
지금은 그 과정이 모두 끝난 채 편하게 후기를 남기지만 당시엔 참으로 까마득하게 보였다.
학점은행제 : 전적대학 점수 + 시간제 수업 점수 + 자격증 점수로 학점을 쌓아 140점이 되면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
3학기 동안 방송통신대학교와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학점을 취득 했다.
내가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찾고 의욕이 넘치고보니 방송통신대학교는 공부하기에 그리 어려운 학교가 아니였다.
지금의 정신이였다면 이미 오래전에 방송통신대학교 졸업도 가능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하든 동기부여, 그것이 중요한거 같다.
2007년 1월.
나는 방송통신대학교 시간제 수업과 서울디지털대학교 시간제 수업에 동시 등록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