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 사이트에서 발췌한 원주의 한 웹에이전시의 프로그래머 모집 조건이다. 학력 조건이 고등학교졸업이다. 나도 한때 고용자 입장이였기 때문에 왜 학력을 고졸로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사실 학력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180여만원의 낮은 급여조건에 나름의 명분을 주기 위해 학력 조건을 낮게 잡는다. 고졸은 이정도만 줘도 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하지만 고졸 프로그래머가 대졸 프로그래머보다 찾기 더 어렵다. 결국 대졸 프로그래머의 급여를 저 정도로 제시한 것이다.

 

이 회사는 원하는 웹프로그래머를 채용 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원주에서 잘 알고 지내는 웹에이전시 사장은 벌써 7년째 개발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를 창업하고 사실상 개발자를 고용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에게 자기 회사의 일을 전담해서 봐 주거나 아예 직원으로 들어와 달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요즘 거리를 두고 있다.

 

만약 실력이 있고 경험이 많은 프로그래머라면 업종 키워드만 보고도 이 회사가 얼마나 근본 없는지 알 수 있다. 이제 갓 프로그래밍에 흥미를 느끼고 독학을 시작한 입문 개발자가 아니라면 이런 회사에 지원 할 정신나간 개발자는 없다. 이런 회사의 특징은 개발자를 구하고 있으면서 개발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있다.

 

개발자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좋은 개발자를 구할 수 없다. 급여는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180만원이면 최저임금보다 많은 것이고 훨씬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저보다 못한 임금을 받는 사람도 많다. 정말 실력이 좋은 개발자라면 회사에 들어가 일당백을 한다. 당연히 급여도 매달 오른다. 회사에서 그 개발자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능력 좋은 개발자라면 회사에서 제시한 급여조건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 구인 정보를 올린 회사는 나와 안면이 있다. 정말 프로그래머를 구하고 싶다면 구인 키워드를 웹프로그래머, PHP, MySQL에서 끝냈어야 한다. 저렇게 연관 없는 키워드를 늘어 놓은 건 아무나 걸리라는 의도다.

 

 

회사가 문을 닫을 때는 이유가 있다

다른 지역은 내가 겪어 보질 않아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지방의 웹 개발자의 환경은 거진 비슷 할 거라고 본다.

나는 15년 동안 원주에서 웹에이전시 업체들의 흥망성쇄를 지켜봤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말 많은 업체들이 있었다. 경쟁도 그만큼 치열했다. 4억이 넘는 자본금과 5억의 밴처 지원금을 투자한 대형 웹에이전시 업체는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고 자본은 없지만 직원들끼리 단합이 잘 되던 업체는 꽤 오리 버텨갔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간판은 많이 바뀌었는데 대부분 같은 사람들이다. 회사가 문을 닫으면 몇몇 마음 맞는 직원들끼리 새로운 간판을 건다. 그렇게 한 회사에서 파생 된 회사가 다른 회사를 만들고 지금까지 웹에이전시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불경기 식당처럼 많은 회사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몰락하기 시작한 닷컴 열풍이 지방으로 내려왔다. 분양형 지역포털이다. 정말 많은 지역포털들이 생겨났다. 플랜카드 광고가 걸리고 땡땡닷컴, 땡땡넷, 땡땡뉴스 등등 비슷한 주제의 사이트들이 오픈했다. 이 회사들은 자리 잡았을까? 사이트는 1년에 10만원도 안 되는 웹호스팅비와 도메인 유지비를 지불하면 닫히지 않고 돌아가기는 한다. 가맹점이라면 매년 가맹비가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유령사이트로 유지 되다 문을 닫는다.

 

문닫는 회사들의 공통점은 프로그래머를 고용하지 않는다.

요즘은 그누보드, XE, 워드프레스만 잘 다뤄도 개발자 없이도 그럴듯한 홈페이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니 디자인과 게시판만 돌아가면 되는 단순한 홈페이지를 위주로 제작하는 웹에이전시는 현상 유지를 할 수 있다. 굳이 개발자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최근에 내가 겪었던 일처럼 의뢰인 입장에서는 업무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 기능이 필요한데 그것을 해결 해 줄 수 있는 웹에이전시를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간판만 그럴 듯한 웹에이전시를 잘 못 만나면 원하는 결과물도 얻지 못하고 시간과 돈을 버리게 된다.

 

지역포털 업체들도 본사에서 여러가지 지원을 해 주겠지만 직관적으로 고객 대응을 하려면 개발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적어도 경험이 많은 웹디자이너라도 고용을 했어야 한다. (어떤 업체는 웹디자이너 + 경리 업무를 함께 할 수 있는 직원을 원하기도 한다.) 이벤트 배너 하나 띄우는 것도 해결 못하면서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겠다는 건 문제가 있다. 라면도 못 끓이면서 국수집을 하겠다는 것이다.

 

 

 

 

원주는 웹프로그래머 하기 힘든 곳이다. 특히 프리랜서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은 웹에이전시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면서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들이 걸러지기 시작했다. 일찍이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염증을 느낀 개발자는 서울로 갔고 연고 때문에 원주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개발자들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필자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처음엔 서울, 경기쪽에서 하청을 많이 받았다. 개발자 부족한 건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닷컴 열풍이 꺼지고 정부에서 IT 벤처 지원을 중단하게 되면서  프로그래머는 그렇게 인기 있는 직종이 아니였다. 학생들은 누구나 개발자가 되는 것 보다 공무원이 되는 걸 원했다. 개발자가 부족한 덕(?)에 나는 지금 이 나이에도 현업에서 개발자를 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이 바닥에서 잔뼈도 굵고 많은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 우리 동네가 개발자로 돈 벌어 먹고 살기가 얼마나 힘들지를 알게 됐다.

원주에서 그래도 잘 나간다던 웹에이전시에서 일하던 개발자가 있었다. 내가 프로그래밍을 가르쳐 주기도 했는데 기본기가 잘 갖춰진 실력자였다. 회사에서도 이 친구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최고 급여가 월 240만원 정도였다. 결국 서울로 직장을 옮기더니 월급이 그 두 배가 됐다.

 

소문

원주에서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를 하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원주에서 의뢰를 받지 않게 된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소문" 때문이였다.

나는 따로 영업을 하지 않는다. 아직 명함도 없다. (하지만 최근 명함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듦) 한때 나는 원주에서 잘 나가는 프리랜서였다. 따로 영업을 하지 않아도 수소문해서 찾아오는 고객들도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원주에 프로그래머가 나 밖에 없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면에 잘 나서지 않을 뿐이지 원주에도 꽤나 실력있는 개발자들이 많이 있다. 나는 그것을 소문을 통해서 접하기도 한다.

 

내가 웹프로그래머가 된 계기도 그렇지만 나는 쇼핑몰 제작이 주력 분야였다. 대형 분양몰 기업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상황이 좋았다. 그러나 홈페이지 저가 제작을 전략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웹에이전시들에 밀려 한 때는 연 매출이 300만원이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저가 전략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소문이 났다. 나를 찾아오면 싸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싼" 이미지 때문에 꽤 오래 고생했다.

 

원주에서 나는 한때 사기꾼으로 소문이 난 적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더 이상 원주에서 개인, 개인사업자 거래를 하지 않게 됐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 몇몇의 일을 해 주긴 했지만 불편하다.

15년 동안 웹프로그래머를 하면서 내가 만난 최고의 진상 고객이였다. 이 업체의 일을 먼저 봐주던 웹에이전시에서도 학을 떼고 도망쳤던 곳이다. 웹에이전시, 개발자가 도망쳤다면 거기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그 업체의 의뢰를 피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사무실이 지척에 있어 의뢰를 거절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였다. 결국 내가 맡게 됐는데 그게 인생 최고의 실수였다. 그 업체가 나에게 쓴 돈이 천만원 정도 된다. 액수만 보면 꽤 많은 돈처럼 보인다. 하지만 달랑 홈페이지 하나가 아니라 거기엔 원주에서 최초로 시도 되는 혁신적인 기능들이 들어갔고 사이트 두 개와 직원들을 위한 인트라넷 구축까지 포함 된 가격이니 누가 봐도 헐 값이다.

나는 그 업체의 진상 때문에 1년 동안 다른 일을 못하고 연매출이 천만원에 그칠 정도였다. 그 업체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영업하면서 이익이 세 배가 넘기도 했다. 그 사이트로 영업하면서 1년 만에 차를 바꾸고 아파트 잔금을 갚았다 하니 매출이 적은 건 아니였다.

 

그 의뢰인은 나를 붙잡으면 돈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원하는 모든 기능을 구현 해 줄 수 있는 개발자를 만났으니 놓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의뢰인으로부터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무너지는 내 자존심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나를 고소 하겠다는 협박 메일은 아직도 메일함에 남아 있다.

웹프로그래머의 자존심은 오만원이였다.

http://zibsin.net/69

한번은 제작 상담을 갔는데 내 이름과 회사명을 말하자 천만원 떼먹고 도망갔다던데 사실이냐고 한다. 내 뒷담화를 하고 다녔던 사람은 그 업체 사장이였다. 프로그래밍 작업은 의뢰인과 서로 신뢰가 없으면 진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성사되지 못한 계약 건들이 생겨났다.

 

그 업체의 사이트를 다시 맡게 된 다른 프리랜서 개발자에게 전화가 왔다. 그 사람도 내게 그 얘기를 한다. 자기 의뢰인이 그러는데 먼저 개발자가 천만원을 떼먹고 도망쳤다던데 사실이냐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개발자를 위로했다. 다음에 소문의 주인공은 당신이 될거라고... 그러자 그 개발자도 고백한다. 그 의뢰인 때문에 지금 많이 힘들단다. 가능하면 빨리 손 떼는 게 좋다고 나는 조언해 주었다.

 

최근에 나에 대한 소문이 또 돌게 될 거 같다. 이번엔 나의 어설픈 동정심 때문이다. 곤란에 빠진 어느 아마추어 웹에이전시를 도와 주려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떼이고(사실 잔금은 내가 그 회사에 기부했다 쳐도 그만이다.) 마음에 상처만 남았다. 이런 회사들은 개발자를 욕하면서 자신들의 잘 못을 희석하려 든다. 그래서 내가 또 원주에서는 나쁜 개발자로 소문이 나게 된다.

 

나를 욕할 땐 욕하더라도 왜 내 연락을 피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개발자가 도중에 잠수타는 경우는 봤어도 원청업체(웹에이전시)가 개발자(나)를 피해 잠수타는 경우는 또 처음이다. 돈은 둘째치고 사람 도리상 만나서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다고 연락을 하는데 왜 피하는 것일까. 그런 무책임한 웹에이전시 때문에 피해 보는 의뢰인이 계속 생길 수 밖에 없다.

 

 

 

 

나는 원주에서 프로그래머로 취직 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

원주는 생각보다 좁다.

소문은 돌고 돌아 언젠가는 다시 나에게 들어온다. 항상 입을 조심해야 한다. 나 역시도 철 없을 때 의뢰인을 욕했다가 그 말이 돌고 돌아 다른 지인을 통해 나에게 들어 온 적이 있다. 그때 정말 놀랬다.

원주는 프로그래머가 많지 않기 때문에 웹에이전시를 자주 상대하던 나에게 어디에 누가 프리랜서를 한 다는 소문 정도는 들어온다. 그 중에 몇몇은 내가 그들의 결과물을 봤을 때 실력이 출중하다. 그런 사람들도 분명 나와 같은 처지가 아닐까 싶다.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나를 만나면 십중팔구 본인 회사에 들어오기를 원한다. 혼자 일하지 말고 자기 회사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너를 취직 시켜 주겠다는 것이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싼 값에 고급 기술자를 부리고 싶은 것일 뿐 진심으로 개발자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다.

 

옛날에는 원주에서 프리랜서 웹디자이너와 프리랜서 웹프로그래머들이 가끔 소통을 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전혀 그런 게 없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소신을 갖고 잘 버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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