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옛날 얘기는 예전 포스팅에서도 자주 언급이 되었기 때문에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하는 주정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15년 전 그 일을 계속 하고 있으니 이야기가 계속 반복 될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통닭집 사장은 되고 싶지 않은 웹프로그래머

http://zibsin.net/205

 

올해로 벌써 15년이 됐다. 내가 웹프로그래머가 된 시기도 아마 이 무렵이였던 거 같다. 20여년을 난 윈도우 프로그래밍을 공부 했었다. 하루아침에 웹프로그래머가 된 계기는 메일 하나에서 비롯됐다.

 

서울에서 내 선배라는 사람에게 소개를 받았다며 메일이 왔는데 나는 정작 그 선배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프리랜서 웹디자이너였는데 쇼핑몰을 만들던 중 개발자가 갑자기 연락이 끊겨 매우 곤란하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가 서버 설정까지 담당했던터라 더 난감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만 해도 서버 설정은 커녕 PHP도 코딩 한 줄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쪽에서 제시한 금액이 신입사원 월급의 두 배가 넘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PHP 책을 구입해서 일주일 동안 공부하고 6주만에 쇼핑몰 기능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긴 했다. 그렇게 나는 웹프로그래머가 되었다.

 

15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홈페이지 제작 일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특성상 주로 자영업자를 상대하게 되는데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자영업자를 상대한다는 건 너무 힘들 일이였다. 업무 강도보다 사람이 힘들어서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수시로 한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웹프로그래머들이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왼쪽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사는 것과 같다.

 

1999년에 처음 창업을 했고 그후에 다시 1인 기업으로 했다가 웹에이전시로 바꿔 2007년까지 운영했다. 그리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후로 웹에이전시를 접고 프리랜서가 됐다. 프리랜서지만 사무실도 갖춰진 1인 기업 형태로 2013년까지 하다가 대학원을 들어가게 되면서 사무실도 정리하고 프리랜서가 됐다.

 

 

 

 

 

 

 

2009년을 마지막으로 나는 더이상 개인, 개인 사업자의 프로그램 의뢰를 받지 않는다. 기존에 거래하던 기업에서 하청을 받거나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프리랜서 디자이너, 지역 웹에이전시에서 부탁하는 일이 아니면 개인적으로 영업을 하거나 프로그램 계약을 하지 않았다. 개인 사업자를 일일이 상대하기란 나에게 너무 벅찬 일이였다.

 

개인적으로 프로그램 의뢰를 받지 않지만 가끔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나 소규모 웹에이전시의 프로그램을 제작 해 주기는 한다. 이런 웹디자이너나 웹에이전시에는 프로그래머가 없다. 요즘 프로그래머를 갖추고 웹에전시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래서 많은 웹에이전시들이 프로그램 부분을 하청으로 해결 하고 있다. 협업이라고는 하지만 하청이다. 그런데 가끔 하청 받은 개발자가 중간에 잠수타는 경우가 있다.

 

잠수타는 개발자은 사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기 실력을 과대 평가하고 자기 능력 밖의 일을 덜컥 맡아 버린 경우와 고객이 진상일 경우다. 소규모 웹에이전시나 웹디자이너들은 프로그래머가 갑자기 연락이 끊기면 의뢰인으로 부터 매우 곤란한 상황을 맞게 된다. 그래서 그런 다급한 업체나 개인 프리랜서들을 가끔 도와주고 있다.

 

얼마전 그런 연락을 또 받았다.

개인 의뢰는 받지 않는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자 다시 연락이 왔다. 본인은 개인이 아니고 원주의 웹에이전시인데 먼저 일 하던 개발자의 거주지가 멀다보니 일하는데 불편함이 있어 가까운 원주에서 개발자를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15년차인 나에게 그 말은 어떤 의미인지 바로 감이 온다.

개발자가 잠수타서 곤란한 상황이냐고 물으니 그런 건 아니고 개발자가 몸이 좋지 않아 갑자기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도찐개찐이다.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커피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잠수탄 개발자가 하던 일을 수습해야 한다면서 달랑 테블릿 하나 들고 나타난다. 사무실이 커피숖과 인접해 있어 내가 노트북으로 볼 수 없냐고 하니 갖어온다.

일단 기획서가 있냐고 하니 없단다.

그럼 전에 작업하던 개발자가 DB 스키마라도 남긴 거 없냐고 하니 SQL 백업한 자료를 보여준다.

하는 게 어설픈 것이 이제 갓 창업한 웹에이전시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꽤 오래 웹에이전시를 했던 업체였다. 그래서나는 더 실망이 컸다.

 

제대로 갖춰진 게 하나도 없는데다 프로젝트 진행이 너무 초보적이라 맡기가 꺼려졌다. 내가 비록 어려움에 처한 에이전시 업체들을 도와주겠다는 뜻을 품었지만 이런 일은 잘 못 맡으면 본전도 못 찾게 된다. 그때 이미 제작 기한을 한참을 지난대다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의뢰인은 소송을 준비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나도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했다.

 

의뢰인과 웹에이전시, 나 3자 대면을 했다.

의뢰인에게 똑같이 물었다.

기획서 있냐하니 없단다. 사업계획서라도 있냐 하니 없단다.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프로그램 작업을 했냐하니 의뢰인은 충분히 말로 설명했고 웹에이전측은 원하는대로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있었다 한다.

프로그램은 내 입장에서 그렇게 고난이도가 아니였다.

프로그램 제작 기간이 늘어지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의뢰인과 제작자의 커뮤니케이션 부재와 의뢰인의 잦은 요구사항 변동이다.

 

일단 내가 수습을 해 주기로 했지만 이걸 완벽하게 보수한다는 거 매우 우려운 일이였다. 프로그램이 워낙 엉망으로 망쳐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수정해 달라며 보내 준 작업 지시서를 보면 너무 초보적이다.

화면에 테이블 깨지고 클릭 안 되고 숫자 바꿔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닌데 보수 요청서를 보면 모두 눈에 보이는 자잘한 것들이다.

아무도 이 프로그램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의뢰인은 IT를 모르고 이런 인터넷 사업이 처음이면 모를 수 있다.

하지만 경력 수년이 되는 웹에이전시는 의뢰인의 설명이 부실하다는 걸 간파 했어야 했다.

홈페이지는 단순히 웹디자인에 게시판 얹어서 도메인에 연결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웹에이전시와 프리랜서들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것이 의뢰인이 요구하는 업무를 분석하는 것이다.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최소한 소프트웨어 공학 이론서 한 번 정도는 읽어 봤어야 한다.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를 덥석 계약해 버린 것이다.

그러고 수습이 되지 않자 나에게 까지 찾아오게 된 것이다.

 

양쪽에서 요구했던 눈에 보여지는 것만 수정하면 사실 며칠 안 걸리는 작업이다.

그 작업만 해주고 나는 돈 받고 빠지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이 싸움에 낀 의미가 없어진다.

어떻게든 두 업체를 화해 시키고 싶었다.

내가 봤을 때 분명히 웹에이전시 측에서 잘못이 컷다.

같이 일을 진행하면서 그 확신은 완전히 굳어졌다.

그래서 가능하면 의뢰인 쪽에서 부탁하지 않은 작업까지 진행하면서 화를 풀어주려 애썼다.

오랜만에 밤샘 작업까지 하며 체력적으로 무리를 했다.

그리고 어느정도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제기능을 하자 의뢰인 쪽에서도 기분이 풀리는 듯 했다.

문제는 나에게 일을 맡긴 웹에이전시였다.

 

분명 잘 못은 웹에이전시에 있는데 나에게 일을 던져 놓고 연락이 없다.

그리고 의뢰인 쪽에 화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두 업체를 화해 시키려고 중간에서 몸 축내가며 작업 해 주고 설득하던 나는 점점 후회가 밀려왔다.

프로그램이 어느정도 구색을 갖춰가자 이젠 양쪽에서 연락이 끊겼다.

FTP도 막아놔서 더이상 작업 진행도 할 수 없게 됐다.

 

어려움에 처한 웹에이전시를 돕고자 했던 내 의미가 완전히 퇴색했다.

또 의뢰인 쪽에서 돈 관계를 떠나 일단 홈페이지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해야 영업을 시작 할 수 있으니 내가 지속적으로 프로그램 봐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었는데 나를 차단 한 걸 보면, 웹에이전시를 고소 할 마음이 있는데 내가 작업을 더 진행해 놓으면 자기들이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의 진심이 완전히 뭉개져 버렸다.

 

 

 

 

 

 

원주에는 많은 웹에이전시들이 있다.

연세대, 한라대, 상지대에 위치한 창업보육센터에만 해도 최소 2, 3개씩의 웹에이전시들이 입주해 있다.

거기다 일반 사업자와 프리랜서들까지 하면 홈페이지 제작업을 하는 사람들 수는 적은 편이 아니다.

요즘은 이미지 소스, 템플릿, 오픈소스들이 워낙 잘 돼 있어서 전문 개발자나 디자이너가 없어도 훌륭하게 홈페이지를 제작 할 수 있다.

템플릿에 게시판 하나만 연동해도 그럴 듯한 홈페이지가 나온다.

XE, 그누보드의 테마는 가격도 저렴하고 퀄리티도 높아 고객들은 대부분 만족한다.

문제는 디자인에 게시판 하나 달랑 연동 되는 그런 단순한 홈페이지가 아니라면 그것을 해결 할 수 있는 웹에이전시나 프리랜서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나 역시도 초보시절 자주하던 실수였는데, 내 역량을 넘어서는 프로젝트를 계약 할 때가 있다. 설명을 들었을 때는 충분히 내 능력으로 가능 할 것으로 봤는데 막상 뚜겅을 열어보면 그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였던 것이다.

그럴 때 많은 프리랜서들이 연락을 끊어버리고 잠수탄다.

잔금을 받지 않았으니 자기는 할만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뢰인 입장에서는 사기 당한 것과 다르지 않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이 있을 때 의뢰인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계약금을 돌려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더 어려운 작업이다, 그러니 더 시간 지체하지 말고 다른 개발자를 찾아 보는 게 좋겠다며 사과한다.

그럴 때 얼굴 붉히거나 화 내는 의뢰인은 본적이 없다.

오히려 고맙다고 한다.

 

위의 사례에서 웹에이전시는 중간에 작업을 포기하고 계약금을 돌려주며 더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다른 업체를 소개하거나 손을 뗐어야 했다.

의뢰인이 가장 화가 나는 것이 그것이다.

일주일만 연기 해 달라, 보름만 연기 해 달라고 해서 약속 기한으로 부터 두 달이나 더 지난 것이다.

그간에 들인 홍보와 영업비를 다 날리 게 된 것이다.

그런데 웹에이전시 측에서는 다른 개발자 하나 꽂아놓고 연락두절이니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처음엔 의뢰인 쪽에 고소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말렸는데 더이상 웹에이전시 편을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2009년 쯤이였다.

서울 소재 웹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나를 알게 됐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를 찾다가 인천에서 누가 나를 소개 했다는 것이다. 아마 온라인 커뮤니티나 내 블로그를 봤던 누군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얘기를 나눠보니 의뢰인이 원주에 있는 기업이였다.

나를 찾던 웹에이전시도 내가 원주 사람인 줄 모르고 원주에 있는 의뢰인을 연결 시켜 준 것이다.

회사 대표와 만나 원주에도 좋은 웹에이전시들이 많은데 왜 서울까지 찾아갔냐 하니 원주 업체는 믿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관공서 일을 주로 하던 그 회사는 원주 웹에이전시들 그정도 실력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 말을 듣고나니 원주에 웹프로그래머의 부재가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개발자가 없어 힘들어 하는 웹에이전시나 웹디자이너를 돕기 시작했다.

나는 돕는다는 의미가 컸기 때문에 가격도 절반 수준만 받았다.

그렇게 하면 원주의 웹에이전시 이미지가 어느정도 쇄신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거라고 믿었다.

 

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지쳤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빠진 에이전시를 만나게 되더라도 마음이 가지 않을 거 같다.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작업하던 걸 이어서 하면 그만큼 일이 줄어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른 사람이 작업 하던 프로그램을 이어서 하게 되면 작업양이 두 세배는 더 많아진다.

당연히 그만큼 단가도 높아지게 된다.

 

내가 돕고 있는 웹에이전시 건이 아니면 나는 1년에 3, 4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매우 적은 수지만 그정도만 해도 나는 보통 1년 연봉 정도는 벌 수 있기 때문에 과하게 욕심 내지 않고 내 시간 써가면서 공부하면서 지내고 있다.

웹에이전시 하청이 아니라면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겪고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다.

 

웹에이전시 다시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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