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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번이라면 아마도 터보-C, 코볼, 포트란을 접해 봤을 것이다. 프로그래밍이나 자료구조 기초를 배울 때 주로 사용되던 언어들이다. 특히 코볼은 사무용 언어로 기업에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교수가 비중있게 다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2000년 대까지도 코볼을 사용하는 회사들이 많았다. 시대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교수들이 자바, 비주얼베이직, 파워빌더 등 다양한 개발 언어들 대신 자신에게 익숙한 코볼과 C를 고집했는지 모르겠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다행(?)인 건 군대를 다녀오니 세상은 변해 있었고 과목들이 완전히 바뀌었다. 개발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해도 90년대에 처음 접한 절차지향 언어들이 손에 익었기 때문에 4, 50대 중년 중에도 웹 프로그래밍을 하는 개발자가 많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고등학생 때 데이터베이스 언어인 클리퍼에 2, 3년 동안 푹 빠져 있었다.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유용한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게 그저 좋았다. 20살 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서점에서 책도 마음 껏 살 수 있었고 부록으로 끼워주는 라이브러리를 이용해 더 고급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게 신났었다. 그때가지는 독학이었고 그 이듬해 대학에 가서 이론부터 다시 배워갔다.

 

나는 꽤 오랜세월 고지식한 편이었다. 실무에서 다른 사람의 소스를 퍼오거나 라이브러리를 이용해 프로그래밍하는 건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로젝트 설계보다 클래스를 만드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그렇다 보니 업무효율이 상당히 떨어진다. 성과도 낮았다.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사무실을 정리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했을 때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점점 GNU 라이센스에 익숙해졌다. 먹고 살려니 그렇게 됐다. eX나 그누보드를 이용한 작업이 많아지면서 프로그래밍은 절대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누가 만들고 배포한 건지는 모르지만 그의 공개 소스(source)를 이용해 작업하는 건 그와의 협업인 것이다. 워드프레스를 이용해 사이트를 구축했다면 워드프레스 본래 소스 이외에 내가 작업한 것들은 나의 기술력이고 나의 자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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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쯤인 거 같다. 나에게 PHP를 배웠던 친구가 어느날 서울에 자리가 났다며 상경하더니 몇 년 뒤에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이 친구는 서울로 가서는 Java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에서는 Java를 코딩 할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PHP로 쇼핑몰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하는 말이(술이 좀 올라왔는지) 서울에서는 PHP 하는 사람들을 프로그래머라고 하지 않고 스크립터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나는 젊었다. 과거 나에게 PHP를 배웠던 친구가 서울에 있는 회사에서 Java를 한다고 이제와서 우월감을 느끼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언짢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얘기다.

 

나는 어느새 중년이 됐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개발환경을 따라잡기가 어렵다. 기껏 새 SDK 환경에 익숙해지면 얼마 뒤 새로운 SDK로 버전업 된다. 이젠 따라잡기가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젠 새 트렌트에 쫓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지금은 stackoverflow를 상시 켜 놓고 검색하면서 코딩한다. 필요한 프로세스를 만들 때 잘 풀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비슷한 공개 소스를 가져와서 사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렇게 서서히 나도 개발자에서 멀어지는 것이겠지. 30년 했으면 오래 한 거 같다. 중년 이후의 삶에선 나의 적성은 무엇일까. 이젠 그걸 찾아봐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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