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번호, 인권침해 소지는 없나?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이다. 자주 겪던 일이라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주민등록 일제 정리기간에 하는 일은 주민등록증에 부여된 주민등록번호 해당자가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이 때 주소지에 주민등록번호 해당자가 거주하지 않고 소재지가 장시간 파악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는 말소 된다. 우리나라에서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면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분리 돼 국가에서 국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 박탈은 물론 국가의 보호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즉, 우리나라에서 태어났고 우리나라에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덤덤한 사람도 있겠지만 주민등록번호의 의도를 알고 나면 감시 당하는 것 같아 불쾌하게 된다.

 

주민등록과 주민등록번호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 호패처럼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주민등록 제도를 운영해 왔다.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주민등록 제도는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처럼 개개인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주민등록번호는 1968년 북한 특수부대 요원이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를 암살하려던 사건에서 시작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는 주민등록법을 개정해 개인에게 식별 번호를 부여하게 된다. 주민과 간첩을 식별하겠다는 목적으로 생겨난 주민등록번호는 지금까지 수 많은 인권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도 유지되고 있는 주민등록번호 발급 방식은 생년월일과 태어난 곳의 지역번호를 조합한 것이다. 이 제도가 처음 시행 됐을 때는 주민등록번호가 중복되는 사람들이 많아 엉뚱한 사람이 범죄자로 몰려 경찰에 잡혀가곤 했다. 주민등록번호는 주민의 이동을 감시하고 통제 하는데 그 첫번째 목적이 있었다.

 

만17세가 되면 우리는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게 된다. 이 때 동사무소에서 열 손가락의 지문을 찍어야하고 주민등록증에는 오른손 엄지의 지문이 인쇄 된다. 선진국에서는 이런식의 지문 날인은 범죄자에게만 하도록 되어 있다. 범죄자라 할지라도 신분증에 지문이 공개 되지는 않는다. 개인식별 번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만17세가 되면 잠재적 범죄 용의자가 되는 것이다. 범죄 발생 시 용의자를 신속하게 검거하기 위한 것이라 하지만 지문과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발생하는 범죄 또한 적지 않다.

 

최근 애완동물 등록제가 시행 됐다. 기관에 애완동물 정보와 보호자의 정보를 등록하고 유기나 분실을 예방하겠다는 취지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런 동물 등록 제도는 가축에게는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소나 돼지의 귀에 귀표라고 해서 일련번호와 바코드가 적혀있는 식별표가 부착 된 걸 볼 수 있다. 농림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소가 태어나면 부여되고 이 소가 도축 되고 고기로 유통이 끝나는 시점까지 이 식별 번호는 바뀌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하다.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도 태어나면 강제로 부여되고 죽어서도 바뀌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 가축처럼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여권은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신분증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여권에도 개인 식별번호가 있다. 여권 유효기간이 끝나거나 재발급 받으면 여권 번호도 바뀌게 된다. 70억 지구인이 사용할 수 있는 여권 번호라면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도 여권 번호처럼 언제든지 재발급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 이건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데이터베이스 용어중에 관계키라는 것이 있다. 흩어져 있는 데이터베이스에서 공통 된 하나의 필드를 이용해 서로 관계있는 정보들끼리 연결 시키는 것을 말한다. 최근 1억 건이 넘는 카드사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 있었다. 여기에 주민등록번호 대신 여권 번호처럼 수시로 변하는 개인 번호나 주민등록번호가 아예 없다면 어떻게 될까. 유출 된 정보의 가치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얼마 전 있었던 포털 사이트와 오픈마켓의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던 사람이 카드사 정보까지 소유하게 됐다면 어떻게 될까. 개인에게 부여된 유일한 식별번호, 즉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서로 관계있는 레코드를 연결하면 특정인의 소비 패턴과 규모, 취미, 성별, 가족 수, 개인 취향, 이동경로 등 수많은 정보들을 조합해 낼 수 있다. 만약 주민등록번호가 아니라면 여러 개로 흩어져 있는 이 데이터베이스를 통합 할 관계키가 없는 셈이다. 그것을 이용해 뭔가 의미있는 정보를 유추해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여권 번호처럼 수시로 바뀔 수 있는 개인번호여도 마찬가지로 흩어져 있던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하기 어렵게 된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1차원적인 후진국형 제도라 볼 수 있다. 히틀러는 유태인을 감시하기 위해 개인 식별 번호를 부여한 적이 있다.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형태다. 그것을 본떠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제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제도는 분명히 사라져야 하는 잘 못 된 제도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