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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년 복학을 앞둔 시점에서 나는 비보 하나를 들었다. 한글과컴퓨터(한컴)가 경영이 악화 돼 아래아한글이 사라질 위기라는 것이다. 최근 방영됐던 응답하라1994를 공감할 수 있는 세대라면 한컴의 위기는 남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처음 컴퓨터를 배우면서 MS-DOS 다음으로 배우는 게 아래아한글 문서편집기였다. 당시에 보석글 같은 문서편집기가 있었지만 위지윅(wysiwyg) 방식의 편집기는 국내에서 아래아한글이 최초이자 독보적이였다. 안철수의 V3와 한컴의 아래아한글은 90년대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S/W였다. 세월이 흘러 이 프로그램들은 시대의 아이콘이고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이 시점이 외국의 글로벌 S/W 기업들이 한국으로 진출해 들어오던 시기이기도 하다. 검색엔진도 알타비스타, 야후가 강세를 보이며 네이버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국내 토종 기업들을 살려야 한다는 바람이 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윈도우95Plus 이후에 많은 윈도우용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고 아리랑, 훈민정음, 일사천리 같은 차세대 문서편집기들도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다른 문서 편집기를 외면하고 아래아한글을 고집했던 이유는 윈도우의 완성형 한글 패키지가 아닌 아래아한글 자체에 포함 된 조합형 한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윈도우 기반의 편집기는 한글을 모두 표현 할 수 없었지만 아래아한글은 모든 한글 표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아래아한글만이 우리글에 적합한 문서 편집기라고 생각했다. 그때 가장 많이 예를 들었던 문자가 "푯"이였다. 완성형 한글의 다른 형태인 PC통신을 위한 행정전산망한글에서도 이런 종성이 혼합 된 한글 중에 표현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그 때는 하드웨어나 네트워크 환경이 지금보다는 좋지 못해서 언어팩의 크기를 가능하면 최소한으로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외국의 검색엔진과 문서 편집기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키자는 학생들의 결의는 네이버를 키웠고 아래아한글을 다시 기사회생 시켰다. 필자도 한글815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친구들과 서점으로 달려가 구매했다. 서점 앞에서는 동시에 이벤트를 진행하던 815콜라 시음회도 함께 하고 있었다. 애국심이 마케팅에 잘 통하던 시대의 마지막을 경험했다.

 

가 아래아한글에 실망하게 된 건 한글2002를 보고 나서였다. 졸업하고 리포트를 작성할 일이 없어지자 문서 편집기를 쓸 일이 거의 없었지만 컴퓨터에는 의례 한글 프로그램이 있어야 할 거 같아서 그 때는 사실 불법 소프트웨어라도 설치 해 뒀어야 했다. 한글815를 구입하고 난 후 가장 뿌듯했던 건 내가 최초로 구입한 정품 소프트웨어였기 때문이다. 만원으로 구입한 프로그램이 학생이였던 내가 사용하기엔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이 프로그램을 졸업하고도 한참 썼으니 지금도 문서 작성하는 간단한 작업에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불필요한 기능까지 강매

비단 한글과컴퓨터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과거 대단한 애국심인냥 한글 살리기에 동참했던 젊은 날을 생각하니 애착과 배신감이 동시에 느껴지면서 감정이 복잡하다. 비록 불법이였지만 한글2002를 설치하고나서 들었던 생각은 무슨 기능이 이렇게 많은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건 문자 입력과 표 그리기다. 그 외 기능들은 사실 몇년이 지나도 클릭 한 번 안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업무적으로 다양한 문서 양식이나 그래픽 기능이 필요한 사람도 있겠지만 사용자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누구나 아래아한글을 사용하는 사람은 이 모든 패키지를 한 번에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한글815는 기존의 정식 버전에서 고급 기능들을 빼고 문서 편집에 꼭 필요한 기능만 제공하는 특별판이였다. 가정이나 일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한글815를 경험하고 나니 쓰지도 않는 고급 기능들까지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가정에서 출퇴근용으로 버스를 사야되는 기분이다.

 

아래아한글에 포함 된 유료 폰트는 불발 된 폭탄과 같다.

언제, 누구에게 터질지 모르는 일이다. 아래아 한글은 다수의 유료 폰트를 포함하고 있다. 이 폰트들은 아래아한글을 설치하면서 윈도우의 Fonts 디렉토리에 복사가 되어 기존의 윈도우 기본 폰트와 섞이게 된다.

 

필자는 위에 보이는 것처럼 무료 폰트를 일일이 저작권 확인 한 후에 따로 수집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 폰트들은 무료지만 대부분 상업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유료 폰트에 비해 다소 질은 떨어질 수 있지만 안심하고 사용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래아한글을 설치하게 되면 유료 폰트들이 무료 폰트와 혼합 되어 사용자는 유료와 무료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메모장의 글꼴을 보면 윈도우의 Fonts에 등록 된 글꼴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포토샵에도 윈도우에 등록 된 폰트를 갖어와 사용한다. 아래아한글에 포함 된 유료 폰트는 문서 편집 할 때만 사용 할 수 있다. 만약 포토샵이나 다른 문서 편집기에서 사용했다면 저작권 위반이 된다. 아래아한글 홈페이지에서는 유료 폰트라 할지라도 2차 저작물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인정한다고 공지 돼 있다. 하지만 유료폰트가 여전히 내 컴퓨터에 설치 돼 있고 아래아한글 외의 그래픽 툴이나 문서 편집기에서 사용했다면 이는 저작권 위반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한컴오피스의 FAQ를 보면 사용범위를 벗어난 폰트 사용으로인해 개발사로부터의 저작권 분쟁에 관하여 대책이 마련 돼 있냐는 질문에 "한컴오피스 2014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폰트의 경우 한컴오피스 2014에서만 폰트 목록이 나타나게끔 하는 Private Font 개념이 적용되어 있습니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즉, 2014 이전 버전부터는 피해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국심으로 마케팅하던 시대는 20세기에 마감했다. 사람들은 이제 감상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게 됐다. 최근에 와서 가정용 컴퓨터에서도 아래아한글을 보기 어려워진데 대해서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예전처럼 문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 양이 줄어들고 가정에서도 굳이 비싸게 돈을 주고 문서 편집기를 구입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에 거부감을 갖는 사용자들도 HWP파일은 한글뷰어로 문서를 보고 MS워드로 문서를 작성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요즘은 엑셀로도 문서 편집을 많이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굳이 아래아한글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고보니 필자 역시 아래아한글을 사용한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IF...

만약에 아래아 한글이 과거의 한글815처럼 사용자에게 필요한 기능들을 구분해 기본형과 고급형을 나눠서 판매 한다면 다시 아래아한글 열풍이 불지 않을까 싶다. 일단은 서점에서 책을 사듯이 필요한 프로그램을 구입 할 수 있을만큼 가격이 가벼워져야 한다. 그리고 사용자를 충분히 배려한 프로그램 개발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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