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막에 섬강을 옆에끼고 산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
견훤산성과 건등산이다.
고려가 세워지기 전 견훤과 왕건의 격전이 펼쳐 진 곳이다.
지금은 흔적만 남았지만 견훤산성은 궁촌리에서 시작 해 후용리를 감싸고 있어 후용산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궁촌리에서 시작 해 부론까지 이어졌다고 어른들의 입에서 입으로 얘기는 전해 지지만 확인 할 수는 없다.
경북 상주의 견훤산성은 아는 사람이 많지만 문막의 견훤산성과 건등산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막은 강원도에서 흔치 않은 곡창지대였고 한강으로 이어지는 섬강이 흐르고 있어 삼국시대부터 백제와 신라가 두고 싸울만 하다.
패기 넘치던 학생 시절 궁촌리에서 손곡리까지 견훤산성을 탐방한 적이 있다.
그 때는 한겨울이라 눈이 많아 성터의 흔적을 제대로 확인 할 수 없었다.
후용2리부터 손곡리까지 이어지는 등선은 높고 험했다.
궁촌리에서 후용1리까지는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 위로는 이렇다 할 성터의 흔적이 없다.
혹시 이번엔 다른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20년만에 다시 그 자리를 찾았다.
■ 견훤산성
궁촌리에서 바라본 견훤산성이 있는 산은 보기에 그리 높지 않다.
견훤산성을 오르는 입구에 견훤성지임을 알리는 표석이 있다.
표석이 없다면 아무도 이곳이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인지 알 수 없다.매년 장마철마다 떠내려 온 돌무더기가 널부러져 있다.
20년 전에는 산 아래는 이런 돌 무더기가 없었다.
대부분 흙속에 묻혀 있었고 정상에서 떠내려온 돌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묘지를 조성하면서 중장비를 동원하고 길을 내면서 흙이 파여 물길이 생기고 흙이 씻겨 내려가면서 돌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 했다.
정상에 견훤산성을 알리는 비가 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사방에 절벽이 많다.
성을 쌓기엔 좋은 조건이다.
사실 성터가 이렇게 많이 남아 있을 줄 몰랐다.
겨울엔 쌓인 눈에 덮혀서 안보이고 여름엔 숲이 울창해 성터의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겨울 답사 때만 해도 성터를 자세히 볼 수 없어서 봄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성터 주변으론 따로 등산로가 있지 않고 가시나무가 많아 얇은 옷을 입고 가면 위험 할 수 있다.
보이는 것처럼 절벽이 많아 미끄럼 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등산화를 꼭 착용하고 겨울이나 비가 오는 날은 피해야 한다.
무너진 성을 보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진다.
20년 전, 내가 고등학생 일 때 이 곳에 견훤성터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산에 올랐을 때 무너져 내려 아무렇게 방치 된 돌 무더기들을 보며 중요한 유적지를 왜 관리 안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이 곳은 성벽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지만 오른쪽으로 새로 무덤을 조성하면서 사람과 중장비가 다니는 길로 사용 되고 있다.
견훤산성의 끝은 낭떠러지다.
부여에 갔을 때 낙화암 축소판을 보는거 같다.
작은 야산이라 사람들의 관심을 사기엔 부족하지만 바로 아래 영동고속도로가 있어 아마도 수많은 사람이 이 성터를 보고 지나갔을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후용리를 지나면서 도로 옆 낮은 야산이 보인다면 이 곳이 견훤산성이며, 견훤의 비극적 생애와 비록 적이지만 자식으로 부터 위기에 처한 견훤을 상보(尙父)라 하여 기꺼이 받아 들인 왕건을 떠올려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멀리 삿갓을 씌운 듯한 건등산이 보인다.
왕건이 올랐다고 해서 건등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곳에서 견훤이 활을 쏘면 건등산까지 날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건등산까지는 5Km가 넘는다.
삼국사기는 아무래도 신라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 많기 때문에 백제에 대해 부정적인 표현이 많지만 현지에서는 견훤에 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견훤산성은 현재 전혀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무덤들이 난립하면서 유적지의 훼손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녹색으로 표시 된 부분이 무덤이지만 사실은 표시 된 것보다 더 많고 산성 주변이 심각하게 훼손 되고 있었다.
이 무덤들의 상당수는 최근 만들어진 것들이다.
산성 주변이 공동묘지화 되어가고 있으며 새로 무덤을 조성 할 때마다 중장비를 동원 하기 때문에 나무가 베어지고 땅이 파여 산성 전체가 장마철 마다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궁촌리 일대에 대단위 화훼농장이 생기는데 주민들 사이에서는 견훤성터가 있는 이 산을 깍아 낼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80년대에 후용리 앞 섬강이 범람 했을 때 복구 작업에 견훤성의 돌을 갖어다 쓰기도 했다니 유적지로써의 가치는 그리 높게 보는 거 같지 않아 머잖아 완전히 사라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궁촌리 지명의 유래는 견훤이 이 산에 산성을 쌓은 뒤 마을에는 토성을 쌓아 그 안에 궁실을 두었다 해서 궁말이라 불리우다 후에 궁촌으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문막 견훤산성은 복구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다.
성은 무너졌지만 성을 쌓았던 돌들이 그 자리에 모두 있고 산이 높거나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복구에 어려움이 없다.
다만 성터에 난립한 무덤이 걸림돌이다.
또 이대로 방치한다면 산이 깎이고 성터가 무너지면서 복구는 커녕 보존조차 어려워 질 수 있다.
■ 건등산
건등산은 260m의 야산으로 삿갓모양의 생김새를 하고 있다.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지만 완만한 경사지가 없어 제법 운동이 된다.
삼양식품 위쪽으로 등산로 입구가 있고 따로 주차장이 없다.
아파트 단지 뒷쪽으로 입구가 작고 이정표가 눈에 잘 띄지 않아 자칫 지나치기 쉽다.
입구에 도착하면 우선 손곡 이달 선생의 건등산 시비를 만나게 된다.
부론면에 손곡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허균의 스승 손곡 선생이 살았던 마을이라 손곡리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10여년 전 손곡리 예술아카데미 홈페이지 작업을 하면서 공부 했던 적이 있는데 조만간 다시 손곡리를 찾아가 봐야겠다.
손곡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법천사지와 법천사 당간지주가 있다.
유명하진 않지만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
법천사지는 몇년째 발굴, 보호가 중단 됐고 장마철마다 유실 우려가 있다.
법천사 당간지주는 농장 창고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빛이 반사 되어 잘 안보이지만 사방으로 등산로 입구가 있다.
문막에 살면서도 건등산 입구는 하나라고 생각 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른 등산로를 이용 해 봐야겠다.
견훤산성에서 봤던 것과 같은 모양의 건등산비가 세워져 있다.
1분 정도 오르면 볼 수 있는 전경이다.
멀리 문막 의료산업단지 일부가 보인다.
건등산도 역시나 무덤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무덤 주변엔 예쁜 할미꽃도 있지만 담배 꽁초와 사람들이 마시고 버린 술병과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버려져 있다.
건등산을 이용하는 문막 시민들이 건등산의 역사적 가치를 이해하고 자부심을 갖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야산이긴 하나 제법 경사가 있다.
카메라 가방도 짐스러웠는데 무거운 장검과 갑옷을 입고 이 산을 올랐을 왕건을 생각 했다.
장군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정상엔 별도로 정상비가 없고 간단한 체력 단력장과 방송국, 통신사 안테나가 있다.
위치를 알 수 있는 측량표가 있고 파손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지만 옆에 누군가에 의해 파손 된 예전 측량표가 있었다.
나무가 울창해 아쉽게도 건등산 정상에서는 견훤산성이 보이지 않았다.
원주는 관리되고 있지 않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 유적지가 많다.
특히 부론은 서울과 가깝지만 산세가 험해 유배지로 쓰였고 강원, 경기, 충청 3도가 접해 있어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가 많다.
정쟁에 의해 억울하게 유배를 가야 했던 죄인들, 그러나 왕이 신임하는 신하는 부론으로 보냈다고 한다.
서울과 가까워 언제라도 불러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주 곳곳 감춰진 유적지를 다니다 보면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다음엔 오랜만에 부론을 다시 찾아가 봐야겠다.